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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파도키아 데린구유 - 20140301

나의 정원 2014. 3. 18. 14:01

 

카파도키아 [Cappadocia]

타우루스 산맥 북쪽의 고원에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자 속국이며

나중에는 로마의 속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카파도키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6세기의 문헌이다.

그당시 카파도키아에서는 봉건세력이 페르시아 사트라프(총독)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지역은 로마에 점령당할 때까지 페르시아의 성격을 유지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카파도키아를 우회했지만,

페르디카스 장군이 이끄는 부대를 이 지역으로 파견했다(BC 322).

카파도키아는 BC 190년에 로마가 마그네시아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가 승리한 뒤

이 지역은 BC 1세기에 폰투스 왕국과 아르메니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로마에 충성을 바쳤다.

17년에 티베리우스가 이 지역을 병합할 때까지

로마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타우루스 산맥의 전략적 통로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11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보루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버섯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카파도키아를

더욱 경이롭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최대 3만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지하 도시이다.

이 곳의 형성 시기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히타이트 시대 즈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본격적인 확장기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곳에 들어와 교육 기관과 교회, 와인 저장고 등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데린구유 (Derinkuyu)
작은 규모의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되었으나

오늘날 일반인에게는 소수만이 공개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가 Nevsehir 에서 29Km떨어진 곳에 위치한 데린구유 지하도시이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 데린구유는

 1965년에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나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은 총 면적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좁다라한 통로 곳곳은 무너져내린 곳도 많지만

놀랍게도 내부의 환기시설은 아직도 잘 작동하고 있다.

데린구유 지하 도시는 총 깊이가 55m에 달하는 8층으로 이루어졌다.

1층과 2층에는 마구간과 포도주 압착기, 돌로 만든 두개의 긴 탁자가 놓여져 있는 식당 혹은 교실이 위치하고 있고

3, 4층에는 거주지와 교회, 병기고, 터널이 있다.

 십자가 모양의 교회, 지하감옥 및 묘지는 지하층에 위치해 있다.

 

 

 

 

 

 

본래 이 지하도시 위에는 이렇게 지상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박해가 거세지면서 마을을 버리기보다는 이렇게 굴을 파서 숨어버린것.

 지상마을 또한 정상적으로 세워져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지하에 거주하고 있었던것.

전시상황이 되어 적군이 마을에 진입하면 지하도시 입구를 봉인했고,

설사 적이 입구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꼬불꼬불하고도 좁은 통로에서

각개격파당하기 쉽도록 구조를 세워놓아 방어력또한 탁월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