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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성, 까를교,구시가 광장,바츨라프 광장 - 20190615

나의 정원 2019. 7. 27. 17:58


프라하 (Praha )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며, 영어로는 프라그(Prague)라고 한다.

체코 중서부, 블타바 강가에 위치해 있으며,

 체코의 경제, 정치, 문화 중심지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중세에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던 데다가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제1, 2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덕분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의 멋진 고전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지붕 없는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실력 있는 거리의 악사들이 거리를 무대 삼아 연주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낭만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프라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소개하곤 한다.


19세기에 제조업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체코의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가 되었다.

주요공업은 중·정밀기계 제조업과 프라하 맥주를 비롯한 식품류 및 전자·화학제품 제조업이다.

 블타바 강이 프라하 중앙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강의 서쪽과 동쪽 모두 역사적 기념물들이 많으며 프라하 궁은 강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 전체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스바티이르지 교회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인 국립박물관까지 갖가지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하다

 문화의 도시로도 유명하여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프라하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로는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이 있다.

관광지로도 유명하여 런던, 파리, 이스탄불, 로마이어 유럽에서 5번째로 방문객 수가 많은 도시로 조사되기도 하였다.



프리하 야경

블타바 강가




틴성당


천문시계



까를교
















까를교







                      프라하 성 (Prague Castle , Pražský Hrad)                         

 프라하를 대표하는 관광지


프라하 성은 9세기 중반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카를 4세 때에 지금과 비슷한 길이 570m, 너비 128m의 성의 모습을 갖추었다.

 191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면서

 현재까지 사용되는 성 중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성의 정문인 서쪽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타이탄의 전투를 묘사한 거인상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에는 프라하 성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근위병이 서 있는데

 매시 정각에 열리는 근위대 교대식도 놓치지 말자.

정문을 통과하면 제1광장이 나오고,

 1614년 합스부르크가의 마티아스 황제(Matyášova)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문을 통과하면 제2광장이 나온다.

제2광장엔 왕궁 미술관과 프라하 성 내부 관람을 위한 티켓을 판매하는 성 십자가 예배당이 관광 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왕궁 미술관 옆으로 난 문은 왕실 정원인 북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이고,

미술관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난 문이 제3광장으로 이어지는 문이다.

제3광장은 프라하 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성 비트 대성당과 현재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는 대통령궁, 구 왕궁, 오벨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성 비트 대성당과 구 왕궁으로 통과하는 통로 아래를 지나면 성 이르지 광장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 성 이르지 성당, 성 이르지 수도원, 황금 소로, 달리보르카 탑, 장난감 박물관 등이 있다.

 프라하 성은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체코어: Katedrála svatého Víta)

프라하의 지표가 될 만큼 크고 아름다운 성당


체코의 수도 프라하대주교좌로 프라하 성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뛰어난 전범으로 꼽히는, 체코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성당이다.


1344년 카를 4세의 명령으로

프랑스 출신이었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의 설계로 착공을 시작해서

 1352년 그가 죽게 되자

당시 23세였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어서 책임을 맡고

페터파를러의 뒤를 이어선 그의 아들이 작업을 맡았다.

후스 전쟁 때 잠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성당을 짓는 작업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16세기에 들어서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이 모습을 나타냈다.

 17세기에 들어서는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되었고

19~20세기에 들어와 건축가와 미술가들에 의해서 신고딕 양식으로

프라하의 지표가 될 만큼 규모가 큰 성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길이 124m, 폭 60m, 높이 33m의 규모로 첨탑의 높이만 100m에 이른다.

성당 내부에는 바츨라프의 왕관과 보석이 보관되어 있고

바츨라프의 무덤과 함께 지하에는 왕실 무덤이 있다.

성 비트 대성당은 무엇보다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데

 제단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세 번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그려진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다.

정문 위의 장미창은 천지창조를 묘사하고 있다.

성당 안에는 카를교에서 순교한 성 얀 네포무츠키의 묘가 있는데

체코의 최대 은광 생산지인 쿠트나호라에서 가져온 약 3톤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제단 오른쪽에 있는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방은 바츨라프 예배당이다.





















타이탄의 전투를 묘사한 거인상


















                 카를교 (Charles Bridge , Karlův most )                       

  프라하의 유일한 보행자 전용 다리이자 체코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석조 다리


구시가지와 말라스트라나를 이어주는,

체코에서는 가장 처음 만들어진 돌(석조) 다리다.

 블타바 강 위에 세워진 다리 중 유일하게 보행자 전용 다리이면서

 프라하 성, 천문 시계와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관광의 중심이다.

 전체 길이는 약 520m, 폭은 약 10m이며 30개의 성상들이 좌우 난간에 각각 마주보며 서 있다.

 말라스트라나쪽과 구시가지쪽으로 양끝으로는 고딕 양식의 교탑이 각각 서 있다.

카를교 위의 성상들은 원본도 있지만 복제품도 마치 원본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복제품의 원본은 국립 박물관과 비셰흐라드 포대에 보관 중이다.

카를교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드는데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그리는 화가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은 늘 소원을 비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얀 네포무츠키 성상









프라하 천문 시계 (Astronomical Clock, Orloj)

 매 정시마다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

구시청사 건물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천문 시계 앞에 매 정각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의 시계 울림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인이 모여 든다.

시계가 정각(09:00~21:00)을 알리면

오른쪽에 매달린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면서

 반대편 손으로 잡고 있는 모래 시계를 뒤집는 동시에

(시계가 그려진 두 개의 원반 옆에는 각각 네 귀퉁이에 네 개의 조각이 달려 있는데 인간 세상의 모습을 의미한단다)

두 개의 문이 열리면서 각각 6명씩 12사도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황금닭이 한 번 울고 나면 끝이 난다.

 천문 시계는 1490년 하누슈(Hanus)라는 이름의 거장 시계공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그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시계를 만들 것을 걱정하여 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시계공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시계에 손을 집어넣어 시계를 멈추게 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로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되었고 지금은 전동 장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프라하 건립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자이크화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프라하 구시청사 (Town Hall of Old , Staroměstská Radnice)

구시가지 광장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

1338년 룩셈부르크의 왕이었던 얀이 시의회 설립에 동의한 후 건축되기 시작하여

 여러 차례 확장 공사를 통해 지금의 복합 양식의 건물이 되었다.

분홍색 건물의 한쪽 벽면에는 파괴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에 의해 무너진 것을 다시 복구하지 않고 아픈 역사의 흔적으로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구시가지 광장 방향으로

 탑의 바닥을 보면 모자이크로 남겨진 27개의 십자가와 함께 1621이란 숫자가 적혀 있는데

그것은 종교 전쟁 중 1621년 발트슈테인 황제군에게 구시가지 광장에서 참수형을 당한 프로페스탄트 귀족들을 기리기 위함이다.

검은 바탕 위에 흰색 모르타르를 칠해 흰색 칠을 벗겨내는 스그라피토 기법이 눈에 띄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부터

 고딕 양식의 천문 시계탑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색다른데

밖에서 볼 땐 모두 다른 건물 같아 보이지만 안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구시가광장






틴성당

틴 앞의 성모 마리아 성당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두개의 첨탑이 인상적인 곳

1365년에 건립되기 시작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인 고딕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고딕 양식의 외관과는 다르게

 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어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다.

프라하 성의 성 비트 대성당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고 있는 이 성당은

 15세기~16세기까지 후스파의 본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높이 80m의 두 개의 첨탑은

아담과 이브의 탑으로 외형상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가 조금 다르다.

두 첨탑 사이엔 보헤미아 왕의 조각상과 후스파를 상징하는 금으로 만들어진 성배가 있었으나

 30년 전쟁 후 가톨릭이 정권을 잡으면서

 왕의 조각상을 녹여 성모 마리아의 초상으로, 성배는 후광으로 제작했다.

성당 내부에는 루돌프 2세 아래서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브라헤(TychoBrahé)가 잠들어 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의 역사적 현장인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 Václavské Náměstí)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긴 대로의 광장


구시가지 광장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광장 중 하나인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국립 박물관에서부터 무스테크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750m, 너비 약 60m에 달하는 긴 대로이다.

국립 박물관 앞에는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서 있으며

 이에 바츨라프 광장의 명칭이 유래되었다.

기마상 앞쪽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좌절되고

1969년 소련군의 침공에 맞서 학생이었던 얀 팔라크가 분신 자살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8년 체코인들의 자유 · 인권 · 민주를 향한 외침인 ‘프라하의 봄’이

 이 광장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의 탱크에 무참히 짓밟혔다.

 체코인들의 자유에 대한 이런 열망들이 바탕이 되어

1989년 11월 극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하벨(Václav Havel)은 반체제 연합인 ‘시민 포럼’을 조직해

 공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 혁명을 이룩하였다.

 시민 혁명이 성공한 뒤, 체코의 대통령이 된 하벨은 한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냈다.

 이는 벨벳 혁명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벨벳 혁명’이란 말이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