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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루자광장, 렉터궁전, 대성당, 성벽 -20190611

나의 정원 2019. 7. 23. 19:37


두브로브니크  ( Dubrovnik)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핵심 포인트이다.

중세 시대에는 아드리아 해에서 중요한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성장했고

,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다 1358년 라구사(Lagusa)라는 도시 국가로 탈바꿈한다.

 라구사 공화국은 인근의 강대국 사이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적절한 균형을 지키는 외교 정책을 통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1667년 대지진으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1808년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에는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을 가해 도시의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인간 방패가 되어

 두브로브니크를 지켰으며 전쟁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루자 광장  (Trg Luža)                      

구시가에서 가장 활발한 광장

필레 문과 이어진 플라차 대로의 한쪽 끝에 자리한 광장이 바로 ‘루자 광장’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종탑, 렉터 궁전, 스폰자 궁전,

성 블라이세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35m 높이의 종탑을 지나면 플로체 문과 이어지고,

 광장 중앙에는 ‘올란도(Orlando) 기둥’이 자리 잡고 있다.

 올란도는 14세기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맞서 싸웠던 영웅으로

 올란도의 팔뚝 길이인 51.1cm가

 두브로브니크 길이의 단위인 1엘(ell, 두브로브니크 표준 단위)이기도 하다.

구시가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 대부분은 이곳 루자 광장에서 열리며,

 밤이 되면 거리 악사들의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성 블라이세 성당




스폰자 궁전





루자 광장(Trg Luža) 중앙에 위치한 올란도(Orlando) 기둥


종탑


렉터 궁전 ( Rector’s Palace )

    두브로브니크의 정치의 중심지, 렉터 궁


1272년 처음 건축되었지만 1435년 화재로 인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1667년에는 대지진으로 파괴되면서 또 한 번의 재건을 통해 지금의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었다.

다양한 건축 양식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크네베브 궁전(Knežev dvor)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렉터 궁전(Rector’s Palac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렉터’는 ‘최고 통치자’라는 뜻으로,

궁전은 두브로브니크 시의 행정을 맡았던 최고 지도자의 집무실이었고,

두브로브니크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궁전 정면에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6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 안뜰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선장이자 자선 사업가로 알려진 ‘미호 프라차트’의 청동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재산을 국가에 기증했는데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38년에 동상을 세웠다.

 안뜰에서는 여름 축제 때 클래식 공연이 열린다.




렉터 궁전(Rector’s Palace)의 미호 프라차트 청동 흉상



성모 승천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12세기 두브로브니크 인근 로크룸 섬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지만

다행히 구조된 영국의 리처드 1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한 헌금으로 원래 있던 교회 자리에 증축해 지어졌다.

하지만 17세기 대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고

바로크 양식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성당 안 보물실에는 성 블라이세의 유물과 두브로브니크의 금 세공사가 만든 금 세공품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과 라파엘로의 ‘마돈나’라는 작품도 볼 수 있다.











오노프리오 분수

16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분수다.

오노프리오분수는 도시 성벽의 정문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1448년 오노프리오 데 카바라는 건축가가 설계하였다.

1667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이후 복원되었단다.

돔 천장을 가지고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는

16면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한 얼굴의 입에서 물줄기가 나오게끔 설계되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두브로브니크 성벽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은 이중으로 된 성벽이다.

 총 길이가 약 2km에 달하고, 내륙 쪽의 성벽은 최대 6m,

 해안 쪽 성벽은 1.5~3m 정도의 두께로 둘러싸여 있으며,

 4개의 요새가 세워져 있고 성벽 밖에 1개의 요새가 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였고

, 전쟁과 지진을 겪으면서 여러 번의 증개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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