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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아를, 아비뇽 - 20161028

나의 정원 2016. 11. 17. 19:47



아를(Arles)

                                                                                          

론 강이 마르세유 북서쪽에서 삼각주를 이루며 갈라지는 카마르그 평야에 있다.

리구리아족의 시대부터 이미 중요한 곳이었던

이 도시는 서로마 제국의 주요도시(아렐라테라고 부름)가 되었다.

 1세기에 성 트로핌이 세운 주교관구가 1790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도시는 6세기에 서고트족에게 함락당한 뒤 730년 이슬람교 침략자들에게 함락되었다.

10세기에는 나중에 아를 왕국으로 알려진 부르군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2세기에는 이탈리아 공화국들과 매우 비슷하게 무역과 항해에서 막강한 독립국으로 떠올랐다.

1239년 이 도시는 프로방스에 흡수되었다.

구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일부는 로마 시대에 쌓은 것이다.

BC 1세기에 건립되었으며 2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고대 로마의 원형투기장은

 아직도 투우 경기와 연극공연에 쓰이고 있다.

로마 시대의 극장을 발굴할 때 나온 '아를의 비너스' 등 많은 미술품들이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7세기에 세운 생트로핌 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개축되었다.


아를 시는 또한 빈센트 반 고흐가 가장 좋은 작품을 그리던 시기에 거주하던 곳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해군기지로 쓰였던 이곳에는

 아직도 하항이 있는데 지금은 주로 유조선들이 이용하고 있다.

산업으로는 화학품·금속 제조업과 제지업이 있지만,

경제는 주로 관광업과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



론 강변



네덜란드 출신 반 고흐는

 900여점의 페인팅  1100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총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그려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흐가 사랑했던 남프랑스의 도시 '아를'이 있다.

반 고흐가 아를에 도착한 것은 1888년

그는 이곳의 노란 집에 방을 빌렸고

노란 집의 침실을 꾸몄고 작업실도 마련했다. 

반 고흐는 아를의 밤에 매료됐다.

 포룸광장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고

밤에 카페를 즐겨 찾기도 했다.

 아를에서 반 고흐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이웃 우체부 룰랭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를에서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반 고흐가 기다렸던 이는 함께 지내며 우정을 나누기로 했던 고갱이었다.

마침내 반 고흐와 고갱은 마침내 함께 지내게 됐지만

예술에 대한 논쟁은 둘 사이를 멀어지게 했고 고갱이 떠나자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르는 행동으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되었고..


반고흐가 즐겨 다녔던 카페




반고흐가 입원했던 에스파스병원


병원 건물은 현재 전시장과 기념품점이 자리하고 있다.





생트로핌 성당




고대극장




원형경기장

반고흐가 그린 원형경기장





아비뇽

아비뇽은 프랑스 남동부 론강역에 위치한 중세도시로

 도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작고 아담해 걸어다니며 보기에 충분하다.

 아비뇽은 1309년부터 거의 70년간 교황청이 옮겨왔었던 곳으로

 로마에 있던 교황청이 무력에 의해 아비뇽으로 옮겨온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는 '비뇽 유수'라고 한다.

교황청(Palais des Papes)과 아비뇽 다리(Saint-Benezet bridge)는 서로 가깝게 위치해 있다.

론 강을 가로지르는 아비뇽 다리는 '어진 다리' 잘 알려져 있다.

‘셍베네제교’라고도 불리며

원래 아비뇽과 빌뇌브 데 자비뇽(Villeneuve des Avignon)을 잇던 다리였는데

17세기 말 홍수로 인해 절반이 떠내려갔고

지금은 4개의 교각과 생 니콜라 예배당만 남아 있다.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아담하고 예쁜 도시 아비뇽.




아비뇽 성곽은

고딕 양식으로 길이는  4.3Km , 성문 14개이다.






교황청







아비뇽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