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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 스페인광장, 마요르광장, 프라도미술관 - 2016025

나의 정원 2016. 11. 1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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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

마드리드(Madrid)는 스페인수도로, 나라의 중앙부에 있다.

 인구는 약 300만 명 (부산광역시, 요코하마 시,경상남도 수준)이다.

 마드리드는 만사나레스(스페인어 : Manzanares)를 끼고 있으며 스페인의 중심에 위치한다.

 마드리드가 쏟아내는 경제적 효과로 인해 주변 도시들이 크게 영향을 받으며

 따라서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의 경제 중심으로 여겨진다.

 또한 스페인 회사의 절대 다수가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드는 3개의 기업(Telefónica, Repsol-YPF, Endesa)도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스페인의 수도로서 정부 청사가 있으며 스페인 왕궁이 있을 뿐 아니라 스페인 정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한편 마드리드는 현대적 인프라를 갖춤과 동시에 역사적인 거리와 장소를 간직하고 있다.

마드리드의 거대한 왕궁이 그 중의 하나다.

스페인 국립극장,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작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 프라도 박물관,

스페인의 왕비인 소피아(Reina Sofía)의 이름을 따서 지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가 이에 포함된다.

인구는 2007년 기준 323만 명이었으며 도시 외곽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510만 명 내외일 것으로 추정된다.

 마드리드를 아우르는 전체 메트로폴리탄 지대의 인구는 584만 명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975년 스페인의 재통합과 민주화가 달성되고 유럽연합에 가입됨에 따라

 마드리드는 재정적 역할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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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돈키호테가 아직도 살아 숨쉬는, 스페인 광장


라 만차의 [돈키호테 Don Quixote de La Manch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소설이자, 최초의 근대소설이자,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무모한 광기의 대명사로 그 이름이 두루 쓰였다.

 1605년 ‘재치있는 이달고 라 만차의 돈키호테’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속편까지 쓰여졌던 이 작품의 작가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군인생활을 하다가 한쪽 팔을 잃고, 해적에게 붙잡히고, 노예로 팔리고,

주인에게 몸값을 지급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를 유명하게 한 작품이 바로 [돈키호테]다.

이 작품 하나로 그는 스페인의 국민작가가 되었고, ‘지혜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드리드의 중심가에 자리한 스페인 광장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세르반테스의 사망 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이다.

그곳에 가면 세르반테스뿐 아니라 그가 써낸 불멸의 주인공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둘시네아도 만날 수 있다.



 스페인광장에 세워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의 동상

그 뒤로 보이는 것은 저자인 세르반테스의 기념상이다.







피가 흥건한 광장, 플라사 마요르


 단일한 가톨릭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던 종교재판.


마드리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17세기 광장인 플라사 마요르는

사실 수많은 광기의 피가 겹겹이 스며 있는 곳이다.

 한때는 투우장으로, 또 한때는 사형장으로,

그리고 한 시절은 종교재판장으로 쓰였던 이곳은 인간의 광기를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1480년부터 스페인에서 있었던 종교재판은 아라곤 왕국페르난도 2세카스티야 왕국이사벨 1세에 의해 시작되었다.

단일한 가톨릭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종교재판은 곧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개신교 이단자, 가톨릭으로 거짓 개종한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종교재판의 대상이었는데,

로마 교황의 대칙서를 받아 종교재판관이 진행한 이 재판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재판이었다고는 해도 피고인에게는 변론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판결의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

고문과 자백이 있을 뿐이었다.

처벌의 형태는 다양했다.

징역, 참수형, 교수형, 화형. 희생자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1790년 화재로 인해 큰피해를 입었으나

  곧 복구, 시장이 들어서는 등 시민의 생활공간으로서

피로 얼룩진 광장은 과거를 잊고 평화로운 관광객들의 집합지가 되고 있다.




 








미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를 만날 수 있는, 프라도미술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작품 [미친 돌의 추출] 


프라도 미술관에는 미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있다.

천하의 달리가 그의 작품 옆을 지날 때마다 질투심에 불타 눈을 가렸다는 바로 그 보쉬.

그의 상상력은 남달라서, 그의 작품 [세속적 쾌락의 정원]은 서양 미술 전체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고,

또 가장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기도 하다.

펠리페 2세가 그의 팬이었던 덕분에 프라도 미술관은 보쉬의 패널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화가이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만끽하려면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정석이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미친 돌의 추출]도 볼 수 있다.

1475년에서 148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작품은 미친 사람의 머리에서 광기의 돌을 꺼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징물을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탁자 위의 구근이다.

미친 사람의 머리에서 꺼낸 것은 광기의 '돌' 아니라 바로 이 '구근'인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구근이 바로 광기의 상징이라고.













고야의 작품 - 1808년 5월 3일의 학살


벨라스케스의 작품 - 시녀들(라스 메니나스)


고야의 작품 - 옷벗은 마야 - 옷입은 마야



그란비아 거리(Great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