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56호)
임진왜란(1592)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험한 절벽을 이용하면서 펼쳐지는 넓은 평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전기의 산성 형식과 같다.
산꼭대기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내성과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2중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이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물고기뼈무늬를 새긴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어서 고려시대까지도 사용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선조 26년(1593)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이 산성은 한강 유역에 있는 다른 산성들과 함께 삼국시대 이후 중요한 방어요새의 역할을 한 곳으로,
160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으며, 권율 장군을 모시는 충장사가 있다.
권율 도원수
1537 (중종 32) ~ 1599 (선조 32)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 (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 모악(慕嶽)
남아(男兒)는 감의기(感意氣)요, 공명(功名)을 수복론(誰復論)하랴
남자는 오직 의이와 기만을 생각할 뿐이지 어찌 부귀와 명예를 따지겠느냐
(1593년 행주대첩에 임하면서 권율장군이 병사들에게 남긴 말씀)
행주산성 입구인 대첩문, 오른쪽에 매표소가 보인다.
대첩문을 들어서면 권율 장군의 동상이 늠름한 모습으로 반긴다.
충장사 입구
충장사는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원래는 행주나루터 안마을에 도원수의 사당인 기공사(紀功祠)가 있었으나
6.25 사변 때 소실되고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름을 고쳐 복원한 것이다.
충장사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다.
대첩기념관은 임진왜란 당시 옛 무기고와 군량창고가 있던 곳인데
1980년 건립한 유물 전시관이다.
행주대첩 당시 우리군이 사용하였던 신기전, 화차등 우수한 무기와 대첩기록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행주대첩비 (1970년)
덕양산 정성에 위치한 이 대첩비는
1963년 경기도민과 각계 유지들이 소규모로 건립한 것을
1970년 행주산성 정화사업때 현재의 모습으로 개건하였다.
높이 15.2m, 화강석
행주대첩비 (1602년)
이 비는 선조 35년(1602) 권율 도원수 막하에 있던 여러 장수들이 장군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행주대첩의 과정과 의의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으며, 비의 높이 1.88m 대리석 .
경기도 문화재(유형문화재 제 74호)로 지정되었다.
충의정은 행주산성 영상 교육관으로
국민의 호국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덕양산 정상에 위치해 한강과 주위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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