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 감상하기..

오르세미술관 전 (국립중앙박물관) - 20140625

나의 정원 2014. 7. 13. 13:55

 

 

인상주의, 그빛을 넘어

 

당대 살롱전은 대중과 미술계에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매번 살롱전에 낙선한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1874년 심사위원, 수상자도 없는 인상파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해 열린 첫 번째 인상파 전시에는 총 165점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세잔, 모네, 드가, 시슬레, 모리조, 피사로, 르누아르, 외젠 부댕 등을 비롯한 30여명의 화가들이 참가했습니다. 1886년에 개최된 인상파의 마지막 전시는 인상파를 대신할 새로운 젊은 화가들의 등장을 예견하는 듯 했습니다. 인상파의 뒤를 이어 새로 등장한 신진 화가들은 색과 빛에 의해 빚어지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기존의 인상파의 화풍에서 벗어나, 이를 보다 신비롭게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인상주의와 그 이후
눈에 맻힌 인상을 파스텔톤의 색채와 붓터치를 통해 표현하는 혁신적인 화풍이었던 인상주의는 1886년 ‘제 8회 회화 전시회’ 라는 전시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미술사조의 등장을 예견했습니다.
새로운 시각, 신인상주의
신인상주의의 회화기법인 ‘점묘법’은 캔버스 위에 색점을 병치시킴으로써 색상의 풍부함, 선명함, 견고함을 강화시켰습니다. 기존의 인상주의가 본능적이면서 즉흥성을 가졌다면, 신인상주의는 이성적이면서 질서정연한 측면을 추구했습니다.
원시적인 삶을 찾아서,
고갱과 퐁타방파
고갱은 산업화된 도시에서 벗어나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삶을 갈망했습니다. 고갱을 따르던 화가들과 함께 고갱은 이국적이고 영적인 주제를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면으로 표현했습니다.
반 고흐와 세잔, 고독한 천재들
반 고흐는 파리에서 2년간 머물면서 인상주의, 신인상주의를 접했으며, 30여점의 자화상을 제작했습니다. 창작활동 초기부터 정물화에 애착을 가졌던 세잔은 수평ㆍ수직 구조를 응용해 공간을 창조하는 기법을 터득해갔으며, 자연 속에서 영원성과 정신의 본질을 찾길 원했습니다.
파리, 아름다운 시절
“파리보다 더 흥미로운 곳은 없다. 파리 이외의 것은 그저 움직이지 않는 배경일 뿐이다”. 당대 파리의 사교계에는 춤, 오페라, 연극, 카페 콘서트 등이 성행했습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빛의 도시 파리에서 일상을 벗어나 인생의 최고조를 만끽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세기 말의 꿈, 상징주의와 나비파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반하여 등장한 상징주의는 기계문명 및 과학에 지배되는 세계를 거부하며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개인의 생각, 내적 환상, 꿈 등을 표현했습니다. 상징주의와 함께 화단에 등장한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의미하는 나비파는 평면적인 색채와 화면을 추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