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글..

하악 하악- 이외수

나의 정원 2008. 10. 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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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시라는 생물이 있다.

일급수 이상에만 서식한다.

철사벌레라고도 한다.

실같이 단순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일정 기간 곤충의 몸속에 기생하다가 성충이 되면 곤충의 뇌를 조정해서

곤충이 물에 뛰어들어 자살토록 만드는 생물이다.

때로는 인간들도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쾌락의 늪에 뛰어들어 자멸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의식 속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허욕의 연가시가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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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초딩이 이외수의 사진을 보고 "나 이 사람 누군지 알아"라고 말했다.

엄마가 대견하다는 듯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군데?" 그러자 초딩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모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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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져버릴 사람이 있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이 있다.

혹시 그대는 지금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질 사람을 환대하고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을 천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하찮은 욕망이 그대를 눈멀게 하여 하찮은 사람과

소중한 사람을 제대로 구분치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나니,

훗날 깨달아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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깬다 시리즈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몽달귀신이 변기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게 물었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가 대답했다.

닥쳐, 멍청한 놈아. 이건 비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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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돈을 욕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 같은 놈의 돈, 원수 놈의 돈, 썩을 놈의 돈, 더러운 놈의 돈.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든 물건이든 욕을 하면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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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