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
오쇼라즈니시 / 류시화 역 (펌)
- 누가 하늘을 나는 불사조를 보았는가 -
누군가 혜자에게 비밀 정보를 전했다. " 장자가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몰아내고 수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함입니다" 혜자는 그만 두려운 나머지 장자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로 하여금 사흘 낮과 밤 동안 온 나라를 수색하게 했다. 그러나 결국 장자를 찾을 수 없었다. 만일 마음 속에 야심이 있다면 종교적으로 되기 불가능하다. 열등감이 없는 자만이 종교적으로 될 수 있다. 세상에 대해 야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곧 그가 열등하다는 의미다. 이것은 가장 기본되는 법칙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그대가 사원으로 가고 희말라야로 간다하더라도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 그대 마음의 본성이 야심적인가 아닌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의 삶은 헛되이 낭비될 것이다. 그대의 모든 추구는 부질없이 될 것이다. 야심은 결코 그대를 신에게로 안내할 수 없다.
추한 사람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 그대가 아름답다면 아무런 노력도 필요없다. 의식적이 될 때 그대는 추해지기 시작한다. 그대는 이것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대는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 비교하라. 그러면 열등감이 생긴다. 비교하지 않으면 그대는 단순히 존재한다. 비교할 때 그대는 핵심을 놓친다. 다른 곳에서는 돌이 되고 어느 곳에서는 새가 되었으며 이곳에서는 바로 그대가 되었다. 그는 어떤 정체도 갖지 않았으며 그는 얼굴이 없었다. 매순간마다 그는 흐름이고 그는 변화이다. 매순간마다 그는 존재를 반영하고 반응한다. 그는 집도 없고 얼굴도 없다. 그는 사실 이름도 없다. 그것은 아름답고 의미있어 보이지만 터무니 없는 것이다. 그대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찍히는 순간 장자는 변화한다. 붓다의 다른 이름은 타다가타 여래이다. 이 이름은 정말 멋있다. 그 의미는 바람같이 그는 오고 그는 간다는 뜻이다. 바람을 사진 찍을 수 있는가. 그는 마음이 없으므로 걸인이라 할 수도 있고 황제라할 수도 있다. 오직 초대할 수 있을 뿐이다.
역사는 시간에 속하고 신화는 영원에 속한다. 과거는 시간에 속하고 종교는 무시간적인 것, 영원성에 속한다. 그대는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 이것은 다만 표면의 수레바퀴다. 지금 곧 그대 속으로 들어가 보라. 거기에는 시간성이 없다. 영원이 존재한다. 거기서는 아무도 늙지 않는다. 야심은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그러나 믿음을 통해서 장자, 불사조가 된다. 그 어둔 밤길에서 간혹 번개의 섬광이 온다. 그때 길을 보라. 붓다도 번개불이다. 장자를보지 말라. 길을 보라. 번개는 계석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끝난다. 장자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대가 장자를 바라보면 그대는 길을 잃는다., 길을 보라 장자는 잊으라. 그것이 붓다, 장자, 예수, 짜라투스트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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