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끼니 / 이기철
지상의 끼니
이기철
종일 땀흘리고 돌아와 바라보는
식탁 위 밥 한 그릇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한 신발, 올이 닳은 양말
불빛 아래 보이는 저 거룩한 것들
한 종지의 간장, 한 접시의 시금치 무침
한 컵의 물, 한 대접의 콩나물국
부딪치면 소리내는 한 쟁반의 멸치볶음
저것들이 내 하루를 이끌고 있다
내일도 저것들이
부젓가락 같은 내 몸을 이끌어갈 것이다
꽃나무처럼 몸 전체가 꽃이 될 수 없어
불꽃처럼 온몸이 불이 될 수 없어
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 없는 이 한스러움
풀씨처럼 작은 귀로 세상을 들으려고
상처를 달래며 길 위에 서는 날도
밥상 위의 한 잎 배추잎보다 거룩한 것 없어
긁히고 터진 손발을 달래며
오늘도 돌아와 마주 앉는 식탁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이 세상을 눈부시게 할 수 있는가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추운 생을 데울 수 있는가
어느새 神이 되어 버린 식탁 위의 밥 한 그릇
이기철
(1943. 1. ~ )
경남 거창 출생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했고,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
시집
'낱말 추적' '청산행' '전쟁과 평화' ' 우수의 이불을 덮고'
'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 시민일기'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열하를 향하여' '유리의 나날'
1986 대구문학상
1990 금복문화예술상
1991 후광문학상
1993 김수영 문학상
1993 도천문학상등 수상
현재 영남대 교수와 영남어문학회 회장으로 재직중